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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눈을 떠보니 비가 오기 직전의 희뿌연 하늘처럼 도심의 상공을 배회하며 푸른 봄 하늘의 낭만을 도둑질하던 정체불명의 미세먼지가 사라져 기분 좋은 주말의 아침입니다.

창틀에 살포시 내려앉은 벚꽃 잎의 향은 사그라져 가지만 바람에 날려가는 꽃 잎을 따라 실려왔는지 어느새 따사로운 햇빛이 베란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4월의 청계산 등산로에는 언제나 그렇듯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더군요.

대학원 원우분들과 교수님과 함께 이름이 조금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옥녀봉을 오릅니다.

체력이 되는 분들은 오전 일찍 모여 산 전체를 등반하는 코스로 먼저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상시 운동 부족의 필연적인 결과물일 저질 체력에 금세 헉헉 거릴까 두려운 마음이 앞서 꼴랑(?) 옥녀봉만을 소심하게 올라봅니다.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이름으로 산 전체를 가득 채운 시원한 숲 속의 상큼함이 산행길의 고통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숲에 살아 있는 흙 속에 숨어 있는 미생물이 분비한다는 천연 우울증 치료제인 세로토닌(serotonin)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네요.

오랜만에 산행에서 즐거운 마음을 만끽하여 봅니다.

하지만 5월이 오면 마음속 깊숙한 곳의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차마 트라우마로 부르기는 어렵지만 손상된 영화 파일의 파편들처럼 가끔씩 나타나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5월 그 민주화 항쟁이 한창이던 광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꼬마가 있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요..

연속적이지도 않고 쉽게 부스러지는 단편적인 기억들 속에 첫 이미지는 웬일인지 학교를 가지 않아도 좋았던 철없는 코흘리개 아이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님은 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지 설명해 주지 않으셨지만 이유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었죠.


당시 안기부(현재는 국가정보원) 광주 분원이 가까운 거리에 있던 화정동 사거리가 바로 집 앞이었습니다.

탱크(Tank)가 온다는 풍문에 가까이서 군인들을 보고 싶던 아이는 골목길을 달려 보았지만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을씨년스러운 바람만 스산하게 불던 거리의 풍경...

출처: 네이버 블로그- 단bee

그 후 부모님은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셨죠.

당시의 기억들에는 창문을 이불로 꽁꽁 동여 매어 불 빛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시며 혹여 가족에게 해가 미칠까 걱정하시던  어머니와 집안에서 울고 있던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왜 울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던 집 앞을 행진하던 군인들의 군화소리....

어린 꼬마에게 학살이니 항쟁이니 하는 어려운 소리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외국어였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출처: 네이버블로그-단bee

어느 날 집 앞 대문을 다급히 두드리던 소리...

철문을 두드리던 소리는 마당을 지나 집 안까지 이어졌지만 누구도 감히 밖을 쳐다 보고 문을 열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리는 갑자기 뚝 끊기며 다시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단지 십여 초에 불과했을 그때의 기억이 왜 아직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누군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군인들에게 쫓기고 있었을까요..

만약 그때 대문을 열어 주었다면 우리 가족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나중에 우리 집에서 불과 500여 미터 떨어져 있던 안기부 광주 지소의 취조실에서 잔인한 고문이 매일 자행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고문 끝에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쌀자루 포대를 타며 놀기 좋았던 작은 동산 속에는 끔찍한 괴물이 살아 있었다는 진실에 숨이 가빠진 것은 먼 훗날 꼬마가 대학생이 된 후였습니다.

어릴 적 엄청나게 큰 시꺼먼 철문과 담장으로 둘러 쳐진 건물에 어떤 신비스러운 비밀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드러난 진실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잔혹함 뿐입니다.


33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던 그곳은 2008년부터 청소년 문화의 집(http://www.gjyc.or.kr/)으로 바뀌었습니다.

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872969

일제 시대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투옥했던 서대문 형무소가 원형으로 보존되어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곳도 청소년들에게 살아 있는 민주화 현장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다시는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이 땅의 시민들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며 총칼로 학살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아직은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의 진실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일베(Ilbe.com) 충이라 불리는 자들이 마스크로 정체를 가린 채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거짓을 이기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5월 장미 대선이 이제 곧 치러집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 모두 똑똑하고 인생에 무언가를 이루신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직접 만나 본 분은 단 한분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뵌다면 분명 존경하게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님께 바라는 단순한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져 있고 청년과 노인들은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지난 세월 암울한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경제적 기적을 이루어낸 위대한 국민입니다.   

잠재력만 살려주어도 다시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로, 청년과 노인으로, 호남과 영남으로, 무수히 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십시오..

폭풍우 치는 바다 한 복판에 표류하는 우리는 하나가 되어 힘차게 노를 저으면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사람이 희망이 되는 복지 국가가 되는 꿈을 꿉니다.   


오늘도 우리는 절망 속에 희망을 노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