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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는 무죄인가? 유죄라면 당신은 죄인일까요?

살아 있는 것들의 유한함은 인간의 마음속에 불멸에 대한 동경을 심어 놓았습니다.

동양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인 진시황의 불로초가 있다면 서양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에 나오는 젊음의 샘(fountain of youth)이 있습니다.


유한함을 무한함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방법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요?


첫째는 말 그대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를 들어 본다면 바로 무시 무시한 암(cancer) 세포가 있습니다.

암이란 병은 우리 몸의 정상 세포가 자연적인 죽음을 거부하고 혼자 살아가겠다고 일으키는 반란과 같다고 합니다.

매일마다 우리 몸은 자살 명령을 받게 된 노화된 수십억의 세포가 자기희생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자살 명령을 거부하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이 세포 단위에서 돌연변이의 형태로 실체화된다면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죽음을 가져오는 결과를 부르고 맙니다.

(실제 암세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영양만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면 이론적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암세포라고 합니다. 무한 증식에 대한 집착이 생존을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하던 우리 몸속 장기들 간의 관계를 무너뜨리면서 결국 기능이 정지하며 사망하게 됩니다.)


둘째는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자손에 남겨 영원한 삶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수십억 년의 진화를 통해 증명된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동식물을 막론하고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 깊숙이 새겨져 있는 충실한 본능입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즉 외모 지상주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예쁜 외모를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동물들의 번식기에는 생명까지 걸 정도로 아름다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놈들의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일상입니다.   


큰 눈과 오뚝한 코, 두툼한 입술, 좌우 대칭인 얼굴, 이런 것들이 그다지 생존에 유리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며 선호하게 될까 궁금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기엔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20세기 초 제안된 '줄달음 선택(fisherian runaway)'이론입니다.

암컷이 잘 생긴 수컷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배우자의 매력이 자손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가설입니다.

내 자식이 잘 생기면 다음 세대의 성 선택에서 선택될 확률이 높아지고 결국 내 유전자가 더욱 많이 퍼뜨려지게 될 것입니다.

암컷을 선택을 받기 위해 수컷은 화려한 외모로 진화해 나간다는 것인데 나름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를 포함해 후줄근한 남성들이 많이 살아 있는 걸 보면 신빙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가설을 이야기하기 전에 시대별 미녀 상의 변화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항상 바뀌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1900년대와 현재의 미녀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출처: 인터넷 블로그(happy virus)

1960년대의 미인도 예쁘긴 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약간 통통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그 차이가 좀 더 선명합니다.

출처: 인터넷 블로그

전반적으로 인중이 짧고 양 볼이 통통하며 계란형의 얼굴보다는 고구마형이 선호되었던 듯싶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의 마른 몸매를 선호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선호하는 대중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선호하게 되는 원인에 대한 두 번째 가설은 '좋은 유전자설'입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개체가 좋은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있는 반면에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실험적 결과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또한 그다지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나치 독일에서 보여 주었던 우생학(Eugenics)적 폐해로까지 번질 수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가설 모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예쁘거나 매력적인 외모가 사회에서 생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외모 지상주의가 현실에서의 위상과 비례하여 인식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철학적 고찰이 필요한 주제로 환원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여도 외모에 어떤 수준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는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생존의 유리함과 자손의 번식에 있어 외모의 중요성은 각 개인별 경험적 영향력이 큰 것 같습니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당신은 외모 지상주의가 무죄라고 생각하시나요?